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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을 위한 무료 진료는 단순한 선의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명을 향한 책임과 병원이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길 위의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한 작지만 분명한 선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기동물 진료를 시작하게 된 이유
어느 겨울 아침이었습니다. 병원 문 앞에 작은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한 마리의 강아지가 떨고 있었습니다. 입 주변은 말라붙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다리를 절뚝이며 앉아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순간 저는 망설임 없이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치료실로 향했습니다. '이 아이는 잘못이 없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그렇게 시작된 것이 유기동물 진료였습니다.
그 한 아이를 시작으로, 병원 문 앞엔 가끔씩 누군가가 몰래 두고 간 상자,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한 고양이, 차가운 바닥에서 떠는 강아지들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동정심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치료를 거듭하며 그 아이들의 눈빛에서 제가 느낀 건 분명했습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말아줘요'라는 간절함이었죠.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우리 병원은 유기동물의 무료 진료를 시작하자.'라고요.
하지만 세상은 제 결심만큼이나 간단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의료 장비, 약품, 인력, 시간… 그 모든 것이 돈과 직결되어 있었고, 병원은 결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마음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그제야 제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료 진료의 벽과 현실의 무게
처음 몇 마리의 진료는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상처를 소독하고, 감염을 막기 위한 항생제를 쓰고, 사료 한 줌과 따뜻한 담요를 제공하는 정도였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게 찾아오는 유기동물들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골절, 내부 출혈, 피부병, 심지어 교통사고로 장기가 파열된 아이까지… 무료 진료라는 결심은 점점 제 병원의 운영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로서 저도 생계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직원들의 월급, 임대료, 약품비, 소모품까지... 한 생명을 살리는 데 드는 비용은 때로 너무도 컸고, 무료 진료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주변 동료들은 조심스럽게 말하곤 했습니다. "네가 마음은 좋은데, 이건 병원을 망치는 길일지도 몰라." 그 말이 상처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현실적인 걱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눈앞의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예산이 부족해 그 치료를 포기해야 했던 날이었습니다. 생명을 앞에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제 모습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수의사로서, 인간으로서 무력감을 느낀 날이었죠.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는 한참을 걸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뭘까? 진정한 유기동물 진료란 뭘까?' 이런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동물병원이 선택한 유기동물 보호의 방식
수많은 고민 끝에 병원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무료로 다 해주자’는 방식보다는, 병원과 지역사회, 그리고 보호자 없는 생명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병원은 몇 가지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유기동물 진료를 '완전 무료'에서 '기초 진료 무상, 추가 치료 최소 비용'으로 바꾸었습니다. 기초적인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응급 상황에 대한 기본 처치는 여전히 무료로 제공하되, 수술이나 고액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병원이 일정 부분 비용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후원금이나 지역사회 모금으로 채워나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둘째, 유기동물 보호소 및 자원봉사자들과 연계해 치료 이후 아이들의 입양을 도왔습니다. 치료만으로는 아이들의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따뜻한 보금자리와 진심 어린 가족이 필요했기 때문에, 지역의 동물보호단체와 적극적으로 협업하며 입양 홍보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병원에 내원하는 보호자들에게 유기동물 입양을 권유하는 일도 이젠 익숙해졌습니다.
셋째, 저희 병원은 SNS를 통해 유기동물 진료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아이의 상태와 필요한 비용, 치료 이후의 회복 모습까지 모두 기록하고 알렸습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과 응원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분들이 보내주는 응원의 메시지는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서 감사합니다"라는 한 문장을 보며 얼마나 위로받았는지 모릅니다.
결국 유기동물 진료란, 단지 생명을 살리는 의료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 사회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제가 가진 전문성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되묻는 시간이었습니다.
마무리하며
유기동물 진료를 하겠다는 다짐은 지금도 여전히 제 안에 살아 있습니다. 물론 처음처럼 다 무료로 해줄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희 병원이 버틸 수 있는 방법으로, 생명을 향한 작은 책임을 계속 지고 싶습니다. 길 위의 아이들이 더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지 않도록, 이 사회가 그들을 외면하지 않도록, 저는 계속 고민하고 움직이려 합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유기동물 문제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게 느끼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꼭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길에서 마주친 아이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보내주고, 지역 동물병원에서 진행하는 유기동물 프로젝트에 소소한 응원을 보내주세요. 그런 작은 행동 하나가, 이 사회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