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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TV 속에서 보던 초원의 사자, 정글의 원숭이,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까지.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꿈일 뿐이었다. 그저 책과 다큐멘터리로만 접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애 처음으로 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를 얻었다. 수의대 입학을 앞두고 동물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는 구경하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막연히 꿈꾸던 동물들과의 교감을 현실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동물들을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 나는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다. 동물들은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빠르며, 생각보다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동물들이 가진 각자의 습성과 성격을 체감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가 수의사의 길을 걷게 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동물들과의 첫 만남, 경이로움을 느끼다
동물원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기린을 처음 본 날이었다. 기린은 멀리서 봐도 거대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그 크기가 더욱 실감 났다. 길게 뻗은 목, 크고 맑은 눈동자, 여유로운 걸음걸이.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기린의 움직임을 보며 나는 넋을 놓고 바라봤다.
기린은 내 손에 들린 나뭇잎을 천천히 받아먹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얼룩말도 인상적이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줄무늬를 가진 그들은 예상보다 예민하고 경계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다가가려 해도 금방 도망가 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거리를 두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동물들과 마주하며 나는 깨달았다. 책으로 배운 지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끼고, 교감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동물들의 다양한 성격, 그리고 교감의 순간
동물들도 각자의 개성과 성격이 있었다. 같은 종이라도 성격이 전혀 달랐다. 어떤 원숭이는 호기심이 많아 사람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 했지만, 어떤 원숭이는 조금만 다가가도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다.
코끼리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코끼리는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의외로 세심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보호자의 손짓과 목소리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동물들과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어느 날, 한 나이 많은 코끼리가 조용히 내 옆을 지나가다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는 긴 코를 내 어깨에 가볍게 닿게 했다. 순간 나는 몸이 굳어졌지만, 곧 그것이 일종의 교감이라는 걸 깨달았다. 코끼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단순히 동물을 좋아하는 것과, 동물과 교감을 나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동물원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동물원에서 일하면서, 나는 단순히 동물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현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일부 동물들은 건강했고 활력이 넘쳤지만, 어떤 동물들은 작은 우리 안에서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무언가 말하지 못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동물원을 단순히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곳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동물들이 우리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원이 무조건 나쁜 곳은 아니다. 일부 동물들은 인간의 보호가 없었다면 생존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동물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나는 ‘동물과 인간이 더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수의사의 길을 결심하다
동물들과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동물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동물을 보호하고, 치료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수의사의 길은 쉽지 않았다. 학문적으로 배워야 할 것도 많았고, 현장에서의 경험도 중요했다. 하지만 동물들과의 첫 만남이 준 감동과 교훈 덕분에, 나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동물원에서의 시간을 떠올린다. 기린과 마주했던 순간, 얼룩말의 조심스러운 눈빛, 코끼리와의 짧은 교감.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동물들을 ‘우리 안의 존재’로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이다.
동물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금 다짐한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보호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그것이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동물과의 교감’을 현실로 만드는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