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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동물보호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길고양이 TNR(Trap-Neuter-Return)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고, 더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이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참여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수의사로서 내가 가진 기술이 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길고양이 문제는 단순한 동물 보호 차원이 아니다. 도심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책임이자, 인간과 동물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중성화 수술을 받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고양이들에게 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TNR의 핵심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나는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편견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 그들을 돕는 일이 단순한 동물 보호를 넘어,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길고양이와 인간, 그 애매한 거리

도시 한복판에서 길고양이들은 조용히 살아간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건물 틈 사이를 누비고, 남겨진 음식물을 찾아 다닌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반기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길고양이에 대한 시선은 극명하게 나뉜다. 어떤 사람들은 밥을 챙겨 주며 그들의 삶을 걱정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길고양이가 불쾌하다며 내쫓으려 한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길고양이를 유해 동물로 취급하며 마을에서 쫓아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TNR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개체 수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길고양이들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다. 결국 인간과 고양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했고, TNR은 그 대안 중 하나였다.

길고양이들을 단순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개체 수를 유지하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TNR 프로젝트의 하루 – 중성화 수술에서 방사까지

TNR 프로젝트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정된 지역으로 가서 고양이들을 포획하는 작업부터 해야 했다. 일반적인 구조와는 다르게, TNR에서는 포획 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하기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트랩을 설치한 후 몇 시간 동안 조용히 기다렸다. 길고양이들은 경계심이 강해 쉽게 다가오지 않았고, 한번 인간에게 잡힌 경험이 있는 개체들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씩 트랩에 들어왔다.

포획된 고양이들은 바로 동물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마취 후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 귀를 약간 잘라냈다. 이는 다시 포획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표식이었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하루 정도 회복 시간을 준 뒤, 다시 원래 살던 지역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처음에는 수술 후 깨어난 고양이들이 놀라거나 두려워할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그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오히려 중성화 후에는 불필요한 싸움이 줄어들고, 건강 상태도 개선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실제로 현장에서 본 고양이들도 수술 후 더 차분해진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한 마리, 두 마리씩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제는 더 이상 원치 않는 번식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조금 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길고양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TNR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었다.

"길고양이를 이렇게까지 챙겨야 하나요?"

길고양이는 반려동물과는 다르다. 가족처럼 돌볼 수도 없고, 완전히 보호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길고양이는 인간이 만든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원래부터 도시에 살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버린 고양이들의 후손이 많다. 즉, 길고양이 문제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을 가질 필요가 있다.

TNR은 길고양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 개체 수를 조절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방법. 단순히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없애려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관리와 보호가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도 달라질 수 있다. 길에서 마주치는 작은 생명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사회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더욱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공존을 위한 작은 실천

TNR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로, 나는 길고양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단순히 ‘도시의 흔한 풍경’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관심이 모이면 이들의 삶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길고양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밥을 챙겨주는 것도 좋지만,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TNR이 활성화될수록 길고양이 개체 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사람들의 불편함도 줄어든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종(種)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길고양이를 위한 작은 실천이 곧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길일지도 모른다.

TNR 프로젝트는 단순한 동물 보호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며,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기회였다.

나는 여전히 길을 지나며 길고양이를 보면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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